게다가 미완.
콰당탕!!!
소란스러운 말소리가 들려온다 싶었더니, 둔탁한 타격음과 쇳소리가 울렸다. 이건 또
무슨 일이람. 라일 디란디-코드네임 록온 스트라토스-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공교롭
게도 라일의 목적지는 방금 소리가 난 바로 그곳이었다. 파일럿 슈츠 정도는 마음 편하
게 갈아입자고. 속으로 한탄하면서 머리를 벅벅 긁는데, 탈의실에서 한 청년이 뛰쳐나왔
다. 조금 당황한 것 같기도 하지만, 그 얼굴에 떠올라 있는 것은 명백한 분노였다. 전장,
그리고 CB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순박한 얼굴을 가진 청년의 이름은 분명 사지 크로
스로드로, 뜻하지 않은 사건에 휘말려서 이곳으로 오게 된 기구한 팔자의 민간인이었다.
그는 라일이 서 있는 것을 발견하고 잠시 흠칫했지만 이내 이를 악물고 지나쳐갔다.
'저기서 나온 사람이 사지 크로스로드라면 남아있는 사람은….'
라일은 굳은 표정으로 오라이저에서 내리던 사지와 그의 뒤를 말없이 따라갔던 더블오의
파일럿을 떠올렸다. 격납고에서 본 이후 그 둘을 본 기억이 없으니 필시 탈의실에 남아있
는 사람은 세츠나 F 세이에이일 것이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더블오라이
저의 통신에서 터져나온 비통한 외침만으로도 그 일이 좋지 않은 일이라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라일은 두 번째 한숨을 내쉬었다. 복잡한 일에 얽히거나 간섭하는 것은 딱 질색이다. 그렇
지만 신경을 안 쓰고 지나치기에는 영 찝찝한 것도 사실이었다. 그렇게 복도에서 망설이고
있는데, 갑자기 문이 열리고 세츠나가 불쑥 튀어나왔다. 화들짝 놀라는 라일과는 달리, 세츠
나는 두 눈을 조금 크게 떴다가 이내 평소의 무표정한 얼굴로 돌아왔다. 평소와 다른 점이 있
다면 세츠나의 오른쪽 뺨이 붉게 부어있다는 것 뿐이었다.
"들었나?"
무심코 세츠나의 뺨에 시선을 고정시키는 라일에게, 앞뒤 맥락없이 세츠나가 툭 말을 뱉었
다. 담담한 어투와 가타부타 설명도 없는 그 말에 라일은 무심코 어?라고 되물으려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방금 도착해서 대화는 듣지 못했어. …네가 사물함에 부딪히는 소리는 들었지만."
라일은 솔직하게 대답했다. 어설프게 못들은 척 하기에는 세츠나의 뺨이 너무나 명백하게
부어올라 있었다. '그 녀석한테 맞은거야?'라고 가볍게 물어보자 세츠나가 '그렇게 되었다.'고
말하며 쓰게 웃었다. 맞아서 부어오른 볼 때문에 보기 드물게 그가 지은 미소가 일그러졌다. 여
리게만 보이던 외모와는 달리 은근히 힘이 센건지, 아니면 정말 화가 나서 있는 힘껏 주먹으로
냅다 쳤는지는 몰라도 어쨌든 의외였다. 적어도 라일이 지금까지 봐왔던 사지 크로스로드라는
청년은 직접적으로 사람에게 손을 대는 타입으로는 보이지 않았으며, 또 강하게 사람을 칠만한
타입으로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츠나 역시, 훈련도 받지 않은 민간인에게 쉽사리
맞을 정도로 허술한 편은 아니었다.
"엄청난 원한이라도 산거야?"
라일은 과감하게 물어봤다. 복잡한 일에 얽히거나 간섭하는 것은 딱 질색이었지만, 이왕 마주치
게 된 바에야 모른척 하기보다는 속 시원히 물어라도 보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대
답이 돌아올거라는 기대는 거의 하지 않았지만, 의외로 성실하고 솔직한 편인 세츠나는 고개를 끄
덕이며 말했다.
"아마도. 그러니까 피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부어오를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작게 덧붙이며 세츠나가 손을 들어 오
른쪽 뺨에 가져다 댔다. 아마 세츠나도 라일이 생각했던 것 처럼 사지를 바라보고 있었던 것 같
다. 그랬기에 그의 공격에도 무방비하게 맞았던 것이고, 생각보다 강한 힘에 균형을 잃어 탈의실
에 구비된 철제 사물함에 부딪혔던 것이다.
"나는, 너무 간단하게 생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손을 내린 세츠나가 고개를 떨군채 말을 이었다. 말수도 적고 먼저 말을 걸어오는 일도 거의 없
는 그로서는 대단히 드문 일이었다. 세츠나의 목소리가 억양이 없는 특유의 말투로 마치 참회하
듯이 조용한 복도에 울렸다.
"만나지 않으면 될 거라고 여겼기 때문에, 일부러 이야기해서 괴롭게 만들 필요는 없다고 판단
했다."
언제나처럼 설명이 부족한 말이었기에 라일은 애써서 이 일의 시발점일 듯한 방금 전의 전투를
떠올렸다. 지직거리는 통신으로 흘러들어온 사지 크로스로드의 목소리는 분명히 '어째서 네가
여기에 있는거야!'라고 말하고 있었다. 경악과 슬픔으로 가득찬 그 소리는 그곳에 있는 누군가를
향하고 있었다.
전장에서의 재회는, 어찌되었든 슬픈 일이다. 하물며 당시 더블오라이저와 교전하고 있던 기체
들은 모두 적기였다. 사지 크로스로드는 아마도 그 적기에 타고있는 누군가와 재회한 모양이었
다.
세츠나는, 그 '누군가'가 적기에-정확히는 어로우즈에 소속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사실을 사지 크로스로드에게 전달하지 않은 채 조용히 넘어갔겠지. 하지만 라일
은 세츠나의 판단을 틀렸다고 이야기 할 수 없었다. 알 게 되었을 때의충격은 배로 돌아오겠지만,
어차피 괴로운 게 매 한가지라면 조금이라도 나중에 알 게 되는 편이 사람에 따라서는 더 나을 수
도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건 어디까지나 당사자가 아닌 제 3자의 입장이므로, 라일은 세츠나가 틀리지 않았다고
이야기할 수도 없었다. 사지 크로스로드가 느꼈을 감정, 그리고 사실은 세츠나가 모든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말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게 되었을 때의 분노는 가늠할 수 없다.
라일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떤 대답을 세츠나에게 돌려줘야 할지 모르겠다는 게 지금 라일
의 솔직한 기분이었다. 물론, 세츠나도 라일에게서 옳다 그르다의 대답을 원하고 있는 것은 아닌듯
하고 단지 누구에게라도 말하고 싶을 뿐인지도 모른다.